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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의

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2007년 봄 미국에서 시작해 2009년 봄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에 휘몰아친 금융위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며, 1929년 대공황에 버금갈 위력으로 세계경제를 혼란에 빠뜨렸다. 원본 p.273

왜 필요한가

위기 이후 선도자본시장의 법제 변화는 위기의 구조적 배경과 세부 원인을 파헤쳐 재발을 방지하려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평가되며, 이 때문에 법제 간 수렴이 일어난다고 지적된다. 원본 p.275

내용

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(8장)

  • 경과: 미국은 2004년 6월(당시 1%)부터 총 17차례 금리를 인상해 2007년 5.25%까지 올렸고, 2006년 말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침체하면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부실화하고 금융기관이 파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. 원본 p.273
  • 파급: 기초자산 가격이 급락하며 이를 활용한 장외파생상품과 구조화상품이 부실해졌고 금융기관이 신용경색과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. 원본 p.273
  • 주요 사건: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가 차례로 파산했고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인수됐으며, AIG는 연준에서 구제금융을 받았다. 패니메와 프레디맥은 정부 보호에 들어갔다. 원본 p.274
  • 실물경제: 2008년 4분기 경제성장률은 미국 -3.8%, 주요 선진국 -3.5%였다. 원본 p.274
  • repo 시장 인출 사태: 한 연구에 따르면 담보 채권 유동성 악화를 우려한 금융기관들이 repo 할인율(haircut)을 인상하며 금융기관 간 인출 사태가 촉발됐고, 유동성이 바닥난 리먼브라더스가 이를 감당하지 못했다. 원본 p.274-275
  • 대응: 미국 정부는 부실 금융기관 정리보다 금리 인하(원문 표기 “금리인화”), 양적완화, 재정 확대로 유동성을 공급했고 주요국과 공조해 시장에 개입했다. 2009년 3월경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했고 실물경제는 2010년 1분기에야 회복세로 돌아섰다. 원본 p.275
  • 한국: 코스피200지수가 2007년 7월 2,000선대에서 2008년 10월 900선 이하로 급락했고, CDS 프리미엄은 2007년 7월 17bp에서 2008년 10월 675bp로 올랐으며, 2008년 10월 28일 원·달러 환율은 1,485였다. 2008년 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-4.5%였다. 원본 p.275
  • 배경과 원인: 막대한 신용 확대(테일러 준칙보다 낮은 금리), 복잡하고 과도한 증권화와 그림자금융, 규제 미비와 감독 실패, 은행 건전성 악화가 차례로 꼽힌다. 원본 p.276-278
  • 증권화 세부: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은 2006년 전체 모기지 대출 중 평균 23.5%(연도 말 13.7%)였고, MBS·CDO·CDO² 같은 합성금융상품 과정을 거치며 최우량등급(AAA)으로 전환됐다. 그림 8-1이 이 과정을 예시한다. 원본 p.276-277
  • 규제·감독: 헤지펀드만 낮은 수준의 규제를 받았고 신용평가기관을 포함한 다른 그림자금융 기관은 규제 대상이 아니었으며, 위험가중자본금과 일일정산 회계 규정은 경기순응적이다. 원본 p.277-278
  • 은행: 은행 신용은 예금보다 빠르게 확대했고 채무는 단기부채에 편중돼 2007년 6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, 대마불사 믿음이 팽배했다. 원본 p.278
  • 법제 영향: G20 회의가 장관급에서 정상급으로 격상됐고 2009년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 합의가 법제 수렴을 확대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. 원본 p.278

자본시장 (1장)

  • 신용파생상품(예: CDS)의 불완전 청산 구조와 불투명 거래가 2007~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일정 수준 표준화한 장외파생상품 거래는 의무적으로 중앙청산기구에서 청산해야 하게 되었다. 원본 p.41
  • 2007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불량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ABS로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신자유주의하의 금융기관 대형화, 금융시장 세계화 물결을 타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했다. 원본 p.66
  •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저금리가 한국 파생결합증권 발흥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. 원본 p.58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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